로우-카페인을 즐길 새로운 방법.
긱앤도즈에 무슨 글을 써야 다른 긱분들이 흥미로워 할까 하다가…
커피긱으로서 흥미로워보이는 물건들 리뷰정도 가볍게 적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 써봅니다.
Decafino라는 제품인데 이름에서 연상되듯이 De-Caf, 카페인 제거를 해주는 티백형태의 제품입니다. 서버에 두고 추출하거나, 추출한 커피에 짧게는 4분으로 60%의 카페인제거를, 8분이상으로 80~90%의 카페인을 제거해주는데, 포인트는 “맛의 변화 없이” 제거해준다네요.
스페셜티 커피가 떠오르면서 더이상 커피를 단순한 카페인 충전을 위한 수단으로가 아니라, 미식의 한 영역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카페인이 적은 품종에 대한 개발이나(라우리나, 아라모사 같은) 혹은 디카페인 가공의 개선에 대한 이야기나, 디카페인 가공에 맞춰서 프로세싱을 만들었다는… (최근에 재밌어 보이던건 Cofinet에서 아예 슈거케인 프로세스를 거치면서도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아예 새로운 프로세싱 프로토콜을 만들고, 그걸로 가공한 핑크버번 디카페인을 내놓았다는데…) 얘기들은 들려오는데
아예 내린 커피에서 카페인을 흡착시켜 제거하겠다는 접근법은 굉장히 새로워 보입니다.
이걸 처음 보게된건 최근 이곳에도 프리즘 대표님이 글을 공유해주고 계셔서 아실, 피닉스커피의 크리스토퍼 페란의 인스타였습니다. 크리스토퍼가 샘플을 요청해서 사용해 봤을때 실제로 맛의 큰 변화 없이, 후미가 Muddy 하게 변하긴 해서 아예 맛 변화가 없다는 수준은 아니지만 괜찮은 물건이라고 페란이 언급해서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됬었고,
지인들끼리 맛없는 커피를 만났을때, “내 카페인 한도를 여기 낭비하기 아깝다”는 농담섞인 이야기를 할만큼 커피를 더 마시고 싶지만, 카페인 때문에 더 마시지 못하는 상황을 만나게 되기도 해서 ‘맛이 구리지 않은’ 디카페인에 대한 열망은 항상 있어 왔으니,
맛의 변화가 없이 카페인을 제거해줄 수 있다면, 퇴근 후에도 커피를 마시고 싶은 직장인들에게는 꿈의 물건이 아닌가? 싶어서 제조사한테 샘플을 받을 수 있겠나, 혹은 구매처가 어떻게 되냐고 문의를 남겼었는데…
아쉽게도 제 메일은 무시당하고
같이 문의했던 수원의 카페 도안 사장님은 샘플을 받게 되서, 사용해보라고 보내주신 덕분에 써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해요 도안!
비교 테이스팅
추출한 커피는 미국 Corvus 커피의 LPyET 내추럴 게이샤.
질감이 가벼우면서 매끄럽고, 후미가 특히 길어서
향이나 질감에서 차이가 생긴다면 짚어내기 쉬울거라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인텐스가 강하지 않으면서 사과, 열대과일과 우롱 노트같이 섬세함을 가진,
이런 디카페인 커피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혼자서 내리는거라, 블라인드, 트라이앵귤레이션 같은 검증은 어렵기도 하고,
거창한 테이스팅은 아니고 개인적인 감상정도로 생각해주세요.
3번 추출해서 서로 비교했습니다. 추출조건은 구형EK기준 6, 트리콜레이트V3에서 4분간 추출했습니다.
각각의 추출>비교까지는 앰버 머그로 음용온도 57도를 유지해가며 비교했습니다.
1. 한잔을 내린뒤에, 반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Decafino를 두고 4분/8분 후 비교
4분에선 질감적으로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고,
8분에서는 조금 거친(grainy한) 느낌이 혀에 걸립니다.
4/8분 다 조금 먼지나 종이냄새같은 향이 코를 스치는데, 식으면서 사라집니다.
2. 두잔을 동시에, 한 서버에는 Decafino를 두고 추출하고, 추출 직후/8분후 비교.
보려던 동시에 내린 두잔 사이의 편차보다 Decafino 사용 시간의 영향이 더 큽니다.
Decafino를 사용하지 않은 컵과 4분 사용한 컵 사이의 차이보다
4분 사용한 컵과 8분 사용한 컵 사이의 차이가 더 두드러지고,
한번 사용한 탓인지 1.에서 느꼈던 종이냄새가 전보다 약합니다.
이정도면 진짜 맛이나 질감 변화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나 싶네요.
3. 다른 워시드 커피를 내린 뒤, 재사용할때 이전 커피의 뉘앙스가 남는지.
Heart의 에티오피아 단체를 추출하고 사용했을때,
이전의 뉘앙스가 좀 남습니다, 흐르는 물에 씻어내는 정도로는 아쉽고
뜨거운물에 몇번 흔들어서 완전히 뺴내고 사용한다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때 뜨거운물에 파우치를 우려낸 물을 마시니까
1,2에서의 먼지향이 좀 느껴지는거 보면 Decafino 파우치 내의 비드 자체에서 나는 향이 좀 있는거 같아요.
거슬린다면 한번 뜨거운물에 린싱하고 사용하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인 생각들
마셔보고 느낀 가장 매력적인 점은, 내가 원하는 커피에서 카페인을 제거할 수 있다는점 같습니다.
작년 엘파라이소 디카페인이 많은 호응을 받았던 이유중 하나가 베이스가 되는 콩 자체가 평소 디카페인의 베이스가 되던 콩들과 확연히 다른, 톤다운되지 않은 밝고 화려한 노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처럼 디카페인-화 하면서 잃는 향미, 혹은 더해지는 디카페인 특유의 느낌 이전에 베이스가 되는 커피의 노트부터가 마음에 안들어서 구매를 피했던 사람들에겐 대단히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최근에 한국에서도 디카페인 가공을 하는 업체가 생기면서, 구매한 생두를 디카페인화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는데, 그 결과물들에 대한 리뷰를 들어보면 원본콩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말도 들리구요.
또한 최근 미국 로스터리에서 보이는 경향이, 디카페인 커피를 라인업에 추가하기보다 디카페인을 포함한 하프-카페인블렌드를 추가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게 어느정도는 재작년 즈음부터 하나의 트렌드가 된 파워냅/커피냅 등의 ‘점심에 커피를 마시고 20분 정도의 짧은 수면을 하는’ 피로회복 방법의 유행에 따른 하프카페인 비중의 증가라는 생각도 들고 (아예 오닉스에선 이런 하프-카프 블렌드의 네이밍을 파워냅 으로 발매하기도 했죠).
저녁에도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소량의 카페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케이스라기보다 과량의 카페인과 위장의 부담때문에 멀리하는것이라… 굳이 향미 손실을 크게 가져가면서 카페인을 완전 없앤 커피보다, 카페인을 줄이기만 해도 사람들이 많이 찾게되는 트렌드를 겨냥한 흐름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극단적인 커피긱들은 솔직히 밤에 그냥 커피를 마시고 잠을 포기하면 포기했지 디카페인 커피는 안먹겠다!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그런 흐름에도 되게 잘 맞아 떨어지니 매력적으로 보이네요.
그리고 맛에 큰 변화가 없는 4분(60% 제거)만 사용했을때 사실 “반정도 줄어드는게 그렇게 큰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일반적인 카페인 제거 반감기(4~5시간)를 고려하면… 저녁 6시 이후에 마신 커피로 새벽 2시까지 잠못이루던 사람이, 반정도만 줄여줘도 10시부터는 원활하게 잠들 수 있는 카페인의 양만큼 남는다는 의미니까 60%만 제거해줘도 의미는 있어보이고, 더 나가서 맛을 조금 손해보더라도 80%까지 제거하면 마시고 바로 잠들어도 될 정도겠구요.
다른분들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맛 변화 없이 카페인을 제거하는 티백,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본문에서도 언급하셨듯이, 연속추출(사용)할 때 사용하는 커피가 다르다면, 이전에 추출한 커피가 후반에 추출된 커피에 영향을 준다는 걸 아는 시점에서 꽤나 준비해야할 과정들이 많은 제품입니다.
오히려 캐주얼하게 회사 근처 카페에서 고정적으로 한잔씩 마시는 직장인이나, 고정된 데일리 커피를 즐기는 홈카페 유저분들에게는 한번 헹구고 보관하기만 하면 총 3번쓸 수 있는, 현시점에서 최고의 로우/디카페인 옵션과 경험을 선사하는 제품인듯합니다.
그리고 디카페인 원두/그라인더를 따로 두지 않는 매장에서도 고객에게 디카페인 옵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구요
추가로, 브루잉이나 아메리카노 같은 블랙커피가 아닌, 베리에이션(라떼, 카푸치노 또는 베리에이션을 만들기 전 에스프레소)음료에서도 같은 성능을 보이는지도 궁금하네요 허허